FICTION현실 지침 아님

행성이 가까워질수록 집이 가벼워졌다

거대한 행성이 지구에 접근하자 집마다 가장 놓지 못하는 물건 하나가 밤마다 하늘로 떠올랐다. 가족은 살림을 묶으며 무엇을 보내야 할지 정한다.

하늘에 두 번째 행성이 나타난 첫날, 정희의 낡은 재봉함이 천장으로 떠올랐다. 가족들은 줄을 걸어 식탁 다리에 묶었다.

거대 행성이 뜬 제주 돌집에서 가족사진과 밥솥과 신발과 귤나무 화분이 떠오르고 가족이 식탁에 줄로 묶는 가운데 노인이 한 물건을 놓아주는 허구 장면 (AI 생성 삽화)
AI 창작 삽화허구 장면행성은 집을 한꺼번에 빼앗지 않았다. 가장 놓지 못하는 것부터 하나씩 가볍게 만들었다.생성: OpenAI ImageGen

무게를 잃는 순서

다음 날에는 밥솥과 가족사진이 함께 떠올랐다. 천문대는 중력 이상이라고 설명했지만 왜 집마다 다른 물건이 선택되는지는 알지 못했다.

사람들은 곧 규칙을 알아냈다. 떠오른 것을 놓아주면 그날은 끝났다. 붙잡으면 다음 밤 더 많은 것이 가벼워졌다. 행성은 물건의 질량이 아니라 미련을 재는 듯했다.

마을 지붕 위에는 의자와 장난감, 제사 그릇이 줄에 매달렸다. 집은 살림을 지키는 닻이 됐고 식탁 다리는 수십 가닥의 매듭으로 덮였다.

묶어 둔 집

정희의 아들은 모든 물건을 지키겠다고 했다. 줄이 모자라자 밭의 그물과 전깃줄까지 가져왔다. 집의 돌담이 조금씩 위로 들렸다.

정희는 재봉함을 묶은 줄부터 풀었다. 남편의 옷을 고치던 바늘과 아이들의 이름을 수놓던 실이 하늘로 올라갔다. 행성 쪽으로 작아지다가 보이지 않게 됐다.

그날 밤에는 아무것도 더 뜨지 않았다. 아들은 어머니가 추억을 버렸다고 화냈다. 정희는 버린 것이 아니라 보내 준 것이라고 답했다.

사람의 차례

행성이 더 가까워지자 먼지와 지붕 조각도 떠올랐다. 어느 집에서는 물건이 아니라 잠든 사람이 가벼워졌다. 붙잡은 손이 가장 중요한 줄이 됐다.

정희 가족은 물건을 하나씩 풀어 사람에게 줄을 옮겼다. 밥솥과 사진, 귤나무가 떠났다. 무거운 식탁만 마당 가운데 남았다.

마을 사람들은 각자의 식탁을 돌담으로 연결했다. 한 사람이 들리면 여러 집이 함께 무게를 나눴다. 누구의 물건이 사라졌는지 묻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남은 무게

충돌 예정일 아침, 푸른 행성은 하늘 전체를 덮었다. 정희는 가족과 식탁 둘레에 앉았다. 더 이상 묶어 둘 살림은 없었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의 몸은 떠오르지 않았다. 놓지 못한 물건을 모두 보낸 집에서는 중력이 평온했다. 식탁 위 빈 자리에 손만 겹쳐 놓였다.

정희는 행성이 지나갈지 충돌할지 알지 못했다. 식탁 위 찻잔이 천천히 떠올라 천장 가까이 멈췄다. 둘러앉은 이들은 손을 놓지 않은 채, 흘러나온 차가 작은 구체가 되어 방 안을 도는 것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