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사라진 지 100일째 되는 저녁, 선아의 남편이 쓰던 앞치마가 저절로 움직였다. 빈 형체는 밥그릇 하나를 더 식탁에 놓았다.

몸 없는 귀가
단지 곳곳에서 같은 일이 벌어졌다. 빈 슬리퍼가 현관을 오갔고 투명한 손자국이 화분에 물을 줬다. 형체는 말을 듣지 않고 생전의 순서만 반복했다.
가족들은 처음에 기뻐했다. 식탁의 빈자리를 치우지 않고 옷과 물건을 그대로 뒀다. 반복은 돌아올 사람을 위한 연습처럼 보였다.
한 주민이 형체 대신 매일 하던 설거지를 마쳤다. 형체는 사라졌지만 다음 날 그 주민도 없어졌다. 싱크대 앞에는 새로운 빈 형체가 남았다.
대신하지 않는 돌봄
관리사무소는 사라진 사람의 습관을 따라 하지 말라고 알렸다. 하지만 어린아이를 재우던 형체와 약을 챙기던 형체를 그냥 둘 수 없는 집이 많았다.
선아는 남편이 놓은 그릇을 치우지 않았지만 같은 자리에 앉지도 않았다. 식탁을 발코니로 옮기고 이웃과 다른 시간에 밥을 먹었다.
빈 형체는 원래 자리에 계속 그릇을 놓았다. 새 식탁까지 따라오지 못했다. 습관에는 기억이 있었지만 새로운 선택은 없었다.
바뀐 저녁
주민들은 집 구조를 조금씩 바꿨다. 소파를 돌리고 화분 위치를 옮겼다. 죽은 반복을 지우려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이 움직일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선아는 혼자 사는 아래층 노인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남편의 형체가 놓은 빈 그릇에는 음식을 담지 않았다. 대신 새 손님 앞에 다른 그릇을 놓았다.
그날 형체의 동작이 처음으로 느려졌다. 반복할 자리는 남아 있었지만 기다리는 사람의 일상은 이미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돌아오지 않는 것을 기억하는 법
봄이 오자 일부 형체는 희미해졌다. 가족이 동작을 대신하지 않아도, 집 안에 새로운 습관이 많아지면 과거의 반복은 설 자리를 잃었다.
선아는 남편의 앞치마를 버리지 않았다. 접어 서랍에 넣되 매일 꺼내 놓지는 않았다. 기억과 반복을 구분하는 데 오래 걸렸다.
마지막 빈 형체가 그릇을 내려놓고 사라진 밤, 식탁에는 의자 하나가 비어 있었다. 선아는 그 의자를 밀어 넣지 않았다. 다음 저녁 아래층 노인이 자기 의자를 가져와 조금 떨어진 곳에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