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태 뒤 첫 구조대가 윗마을에 식량을 전했다. 다음 날 그들이 걸어간 길은 풀과 돌로 돌아가 흔적 하나 남지 않았다.

사라지는 발자국
위성 지도와 나침반은 멀쩡했지만 실제 지형은 밤마다 바뀌었다. 어제의 능선은 골짜기가 되고 표시한 나무는 다른 곳에 나타났다.
배달원 해수는 윗마을에서 받은 짧은 답장을 가방에 넣었다. 돌아오는 발이 자신이 남긴 자국과 겹치자 흙이 단단해지고 작은 돌길이 생겼다.
물자만 놓고 온 구간은 다시 사라졌다. 누군가 받았다는 표시와 필요한 것을 적은 답장이 있어야 길이 양방향으로 고정됐다.
답을 기다리는 운송
큰 도시는 산촌에 일방적으로 배급 명령을 보냈다. 답장을 기다리지 않은 차량은 돌아오는 길을 찾지 못했다. 빠른 전달이 가장 먼 고립을 만들었다.
해수는 물건보다 빈 종이를 더 많이 들고 다녔다. 글을 모르는 사람은 그림이나 매듭을 보냈다. 무엇이든 상대가 응답했다는 흔적이면 충분했다.
어떤 마을은 외부와 연결되기를 거부했다. 해수는 길을 억지로 만들지 않았다. 입구에 편지를 두고 돌아왔고 발자국은 다음 날 사라졌다.
겹쳐진 길
겨울 전날, 거부하던 마을에서 아이가 답장을 들고 내려왔다. 길은 아이가 걸어온 구간부터 생겼다. 해수가 같은 길을 올라가자 좁은 흙길이 능선까지 이어졌다.
두 마을은 길의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았다. 답장을 멈추면 다시 사라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매주 서로의 필요와 안부를 주고받았다.
길은 곧게 나지 않았다. 답장을 전한 사람들의 발걸음만큼 굽고 넓어졌다. 자주 오간 집 앞은 넓고, 명령만 보낸 기관 쪽은 여전히 잡초밭이었다.
왕복하는 지도
해수는 완성된 지도를 만들지 않았다. 오늘 답장이 도착한 길만 종이에 표시했다. 도로망은 관계가 이어지는 동안에만 유효했다.
봄이 되자 산 사이에 여러 갈래 길이 생겼다. 물자와 사람뿐 아니라 질문과 대답이 오갔다. 고립된 마을들은 중심 도시 없이 서로 연결됐다.
받는 곳 없는 편지
해수는 가방에서 마지막 빈 편지를 꺼냈다. 받는 곳은 쓰지 않았다. 능선 아래 보이지 않는 마을에서 연기가 한 줄 올라왔고, 그의 발끝 앞 흙이 편지 한 장 너비만큼 단단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