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환자는 퇴근한 지 사흘 된 상담사였다. 그는 혼자 집에 있었고 누구와도 만나지 않았다. 그런데 상담실 동료가 지난주 점심 대화를 떠올린 순간, 두 사람은 동시에 같은 문장을 듣고 열이 올랐다.

기억 속의 접촉자
질병은 전화선도 공기도 타지 않았다. 오래전 대화를 생생하게 기억하면 상대가 어느 도시에 있든 감염됐다. 반대로 매일 마주쳐도 아무 말을 기억하지 못한 사람 사이에는 옮지 않았다.
접촉 기록은 대화 기록으로 바뀌었다. 누구와 있었는지가 아니라 누구의 목소리가 아직 머릿속에 남았는지 적었다. 짧은 안부는 약했고, 평생 잊지 못할 고백과 다툼은 수백 번 재감염을 만들었다.
상담실 관리자 수진은 직원들에게 통화 내용을 지우라고 했다. 하지만 지우려고 반복할수록 문장은 또렷해졌다. 잊기 위한 교육이 가장 강한 전파 행사가 됐다.
말하지 않는 도시
도시는 침묵하기 시작했다. 회의는 손짓으로 바뀌고 가족은 필요한 말만 종이에 썼다. 녹음된 목소리도 기억되면 병을 옮겼기에 방송은 자막과 음악만 내보냈다.
그러나 이미 나눈 대화가 문제였다. 사랑했던 이를 잊으려 사진과 메시지를 없애는 집이 늘었다. 가족의 이름을 금지한 집도 있었고, 소중한 목소리를 지키려고 문을 잠근 이도 있었다.
수진에게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마지막 전화가 남아 있었다. 어머니는 감염될 수 없었지만 그 대화를 떠올릴 때마다 수진의 열은 내려갔다. 죽은 사람과의 기억은 전파할 곳을 찾지 못해 감염을 잠시 멈췄다.
잊힌 사람들의 병동
병원은 환자에게 오래전 세상을 떠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다. 환자는 죽은 이를 기억하는 동안 서로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 병동은 부재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 찼다.
문제는 회복 뒤였다. 열이 내린 사람은 최근의 대화를 조금씩 잃었다. 수진의 직원들은 서로의 얼굴은 알지만 함께 일했다는 사실을 잊었다. 감염 고리가 끊기는 만큼 공동체도 지워졌다.
수진은 모든 통화를 한 문장으로 줄여 적었다. 내용은 남기되 목소리를 떠올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종이 더미에는 사과, 환불, 외로움 같은 단어만 남았다.
다시 말하는 날
마지막 유행이 지나간 뒤 대화가 조심스럽게 돌아왔다. 한 번에 한 문장,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은 말부터 골랐다. 날씨와 식사, 창밖의 빛처럼 잊어도 관계가 무너지지 않는 것들이었다.
수진은 상담실의 헤드셋을 치우고 긴 탁자 하나를 놓았다. 같은 공간에 앉은 이들은 서로의 말을 받아 적지 않았다. 기억하는 것이 위험했던 세계에서, 듣고 흘려보내는 일이 새로운 예의가 됐다.
어느 날 수진은 어머니의 마지막 목소리를 떠올리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열은 오르지 않았다. 그는 슬퍼했지만 다시 전화기를 들었다.
첫 상담의 상대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다음 날 잊었다. 수화기에는 손바닥 온기만 오래 남았다. 그는 빈 기록지의 통화 시간 아래에 단어 대신 작은 동그라미 하나를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