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휴게소를 삼킨 뒤 버스 기사 명수는 세 번 같은 화장실 앞을 지나갔다. 주머니에서 딸의 한 짝 장갑을 꺼내자 발밑에 마른 길이 나타났다.

제자리로 가는 도로
휴대전화 지도는 직선을 가리켰지만 걸으면 매점 뒤로 돌아왔다. 차를 몰아도 주행 거리는 늘지 않았다. 안개 속의 검은 형체만 조금씩 가까워졌다.
한 승객이 버리려던 도시락을 들자 다른 길이 열렸다. 사과하지 못한 사람에게 전하려던 것이었다. 사람마다 물건과 길의 방향이 달랐다.
명수는 딸을 만나지 못한 마지막 날 장갑을 차 안에 남겨 두었다. 그것을 인정하자 길은 휴게소 밖 산길로 이어졌다.
대신 들 수 없는 것
무거운 물건을 든 노인을 돕기 위해 청년이 대신 가방을 들었다. 길은 즉시 굽어 두 사람을 매점 앞으로 돌려보냈다. 안개는 친절과 책임을 구분했다.
사람들은 물건을 들어 주는 대신 옆에서 걸었다. 각자의 길은 따로였지만 속도를 맞추면 나란히 이어졌다. 후회를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물건이 없는 사람은 더 오래 머물렀다. 그들은 휴게소를 뒤져 버린 물건을 찾거나, 손에 남은 작은 흔적을 인정해야 했다.
그림자 사이
길이 깊어질수록 안개의 형체가 가까워졌다. 그것들은 공격하지 않고 사람들이 물건을 내려놓기만 기다렸다. 후회를 버리는 순간 길도 사라졌다.
명수는 장갑을 쥔 손이 저려 왔다. 옆을 걷던 승객이 속도를 늦췄다. 대신 들어 주지는 않았지만 혼자 들게 내버려 두지도 않았다.
산등성이에서 안개가 잠깐 갈라졌다. 서로 다른 길 수십 개가 같은 고개를 향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멀리서 손을 흔들었다.
가지고 나온 것
휴게소를 벗어난 뒤에도 물건은 사라지지 않았다. 장갑과 도시락과 가방은 그대로였다. 안개는 용서도 벌도 주지 않았다.
명수는 딸의 장갑을 우편으로 보내지 않았다. 직접 찾아가 왜 가지고 있었는지 말하기로 했다. 그 결정이 길의 끝인지 또 다른 시작인지는 알 수 없었다.
뒤돌아보자 휴게소는 다시 안개에 잠겼다. 막 도착한 버스에서 승객들이 하나씩 내렸다. 운동화와 구두와 맨발 아래로 서로 다른 폭의 길이 갈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