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CTION현실 지침 아님

아홉 초 정차

공항철도 열차가 교량 위에서 멈춘 뒤 감염은 한 칸을 아홉 초 만에 건넜다. 살아 있는 감염자는 빛이 꺼질 때만 달리기를 멈췄다.

열차는 역과 역 사이, 한강으로 들어가는 교량 위에서 멈췄다. 안내 방송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다섯 번째 칸에서 누군가 비상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규칙적인 세 번이 아니라, 쉬지 않는 달리기처럼 빠른 소리였다.

푸른 새벽 서울 외곽 고가 교량에 멈춘 열차와 창 안의 승객들, 좁은 점검로를 달리는 감염자를 그린 허구 장면 (AI 생성 삽화)
AI 창작 삽화허구 장면열차가 멈춘 뒤 아홉 번째 초. 객실 조명은 켜져 있고, 점검로의 한 사람은 다음 문을 향해 달린다.생성: OpenAI ImageGen

아홉을 세는 사람들

첫 감염자는 공항 화장실에서 넘어져 입술이 터진 남자였다. 그를 일으킨 직원의 손에 피가 묻었다. 직원은 아홉 걸음을 떼기도 전에 몸을 돌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달려들었다.

전환에는 언제나 아홉 초가 걸렸다. 눈이 흐려지는 과정도 열이 오르는 시간도 없었다. 감염된 사람은 아홉 번째 초에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그 순간 보고 있던 방향으로 전력 질주했다.

사람들은 숫자를 알게 된 뒤 더 공포에 빠졌다. 누군가와 부딪힐 때마다 객실 전체가 함께 초를 셌다. 여섯, 일곱, 여덟. 아홉을 말하기 전에 다음 충돌이 시작됐다.

꺼진 객차

네 번째 칸의 조명이 합선으로 꺼지자 소리가 갑자기 멎었다. 휴대전화 불빛이 켜지는 순간, 통로에 굳어 있던 감염자들이 동시에 움직였다. 사람들은 화면을 뒤집었고 객차는 다시 조용해졌다.

감염자들은 어둠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보이는 것이 없으면 움직임 자체를 잊었다. 한쪽 발을 든 채, 손잡이를 잡으려는 자세로, 숨만 거칠게 쉬며 멈췄다. 작은 충전 표시등 하나에도 고개를 돌렸다.

열차 기관사 수민은 객실 전원을 한 칸씩 끊었다. 빛이 사라지는 속도보다 감염이 이동하는 속도가 빨랐다. 맨 뒤 칸부터 어두워졌고, 승객들은 앞사람의 코트 자락을 잡은 채 보이지 않는 통로를 옮겨 갔다.

교량의 신호

열차 바깥에는 붉은 신호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켜져 있었다. 창문을 가려도 빛은 문틈과 연결 통로로 들어왔다. 붉은 점 하나가 지나갈 때마다 어둠 속 감염자들의 몸이 짧게 움직였다가 다시 굳었다.

수민은 관제실과 연락이 닿지 않자 열차를 천천히 후진시켰다. 신호등 하나를 지날 때마다 객실 안에서 발소리가 한 번씩 났다. 승객들은 움직임과 정지 사이의 간격으로 남은 교량 길이를 셌다.

그때 맞은편 선로에서 빈 열차가 다가왔다. 환하게 켜진 객실이 창문을 스치는 동안, 어둠 속의 감염자들은 빛을 따라 한꺼번에 달렸다. 문이 흔들렸고 가려 둔 창 사이로 흰 줄이 지나갔다.

종착역 없는 열차

후진하던 열차는 터널 안에서 멈췄다. 바깥 신호도 도시의 불빛도 닿지 않았다. 감염자는 조각상처럼 굳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느 문을 열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수민은 운전실의 마지막 표시등을 손으로 가렸다. 열차 안에서 빛은 사라졌지만 엔진의 진동과 사람들의 숨은 남았다.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없는 동안만 모두가 같은 승객이었다.

멀리서 새벽 첫차의 불빛이 터널 벽을 훑었다. 감염자들의 발끝이 먼저 들렸다. 수민은 눈을 감고 운전실 문고리를 찾았다.

여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