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CTION현실 지침 아님

자정마다 한 층씩 사라지는 아파트

첫날에는 13층만 없어졌다. 다음 날은 6층, 그다음은 21층이었다. 건물은 낮아지지 않았고 빈자리는 계단 사이에 남았다.

13층이 사라진 첫날, 주민들은 숫자만 없어진 줄 알았다. 엘리베이터 버튼은 12 다음에 14가 있었고, 계단 안내판도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2층과 14층 사이의 계단은 아홉 미터 길이의 빈 공간 앞에서 끝났다.

한국 아파트 계단실 중간의 한 층이 깨끗하게 사라져 계단과 복도가 공중에서 끊기고 주민들이 난간 앞에 모인 허구 장면 (AI 생성 삽화)
AI 창작 삽화허구 장면6층이 사라진 다음 날 새벽. 계단은 5층과 7층 사이에서 끊겼지만 건물 밖의 높이는 어제와 같다.생성: OpenAI ImageGen

없어지지 않은 빈자리

건물 외벽은 낮아지지 않았다. 13층이 있던 높이에는 창문도 벽도 없이 가로로 긴 틈이 생겼다. 비둘기가 그 안으로 날아들었고, 맞은편 동의 주민들은 틈 너머로 반대편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소방 사다리가 도착했지만 어디에도 걸 수 없었다. 사라진 층에는 바닥이 없었고, 위층은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구조 기술자는 기둥을 가리키며 말을 멈췄다. 기둥도 없는데 건물은 흔들리지 않았다.

13층 주민 명부는 비어 있었다. 관리비 기록에는 12층 다음으로 14층이 나왔다. 택배 기사들의 사진에서도 문 앞에 놓인 상자만 사라졌다. 하지만 12층 주민은 위층 아이가 밤마다 피아노를 쳤다고 기억했다.

다음 번호

둘째 날 자정에는 6층이 사라졌다. 이번에는 모두가 복도에 나와 시계를 보고 있었다. 11시 59분 59초가 지나자 불빛이나 소리 없이 문과 벽과 사람들이 없어졌다. 남은 공기가 아래로 떨어지면서 단 한 번 바람이 불었다.

주민들은 사라질 번호에 규칙이 있다고 믿었다. 13 다음에 6이므로 날짜, 동 번호, 소수, 엘리베이터 점검 주기를 대입했다. 단지 회의실 벽은 숫자로 가득 찼다. 어떤 계산도 셋째 날의 21층을 맞히지 못했다.

21층이 사라진 뒤에는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그 층에 살던 동대표의 이름은 회의록에서 지워졌지만, 사람들은 빈 의자를 치우지 못했다. 아무도 누구 자리인지 말할 수 없었다. 다만 그 의자에 앉으면 안 된다는 감각만 남아 있었다.

낮은 곳과 높은 곳

사람들은 어느 층이 더 안전한지 다투었다. 낮은 층은 먼저 숫자가 바닥날 것 같았고, 높은 층은 계단이 끊기면 고립될 것 같았다. 이사를 가려는 차량이 단지 입구를 막았다.

그러나 주소를 바꿔도 소용없었다. 전입 신고를 마친 사람의 새집 층수가 다음 자정에 사라졌다. 반대로 단지 밖 찜질방에서 밤을 보낸 주민은 몸만 돌아왔고, 집과 가족사진은 없어진 층과 함께 지워졌다.

빈 층이 늘수록 아파트는 거대한 세로 악보처럼 보였다. 남은 층의 불빛 사이로 검은 줄이 생겼다. 아이들은 맞은편 동의 빈 칸을 세며 다음 번호를 점쳤다. 어른들은 아이가 숫자를 입 밖에 내지 못하게 했다.

0층 공고

열두 번째 날, 관리사무소 게시판에 종이 한 장이 붙었다. 프린터도 직원도 만든 적 없는 공고였다. 종이에는 숫자 하나만 찍혀 있었다. 0.

단지에는 0층이 없었다. 지하는 B1부터 시작했고 지상은 1층부터였다. 사람들은 처음으로 안도했다. 없는 층은 사라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자정이 되자 모든 아파트의 현관이 땅에서 떨어졌다. 화단과 도로, 놀이터와 경비실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건물들은 지면과 닿지 않은 채 정확히 한 층 높이만큼 떠올랐다.

그 아래에는 빈 공간이 없었다. 오래전 철거된 주택과 밭, 묻힌 개울이 희미하게 보였다.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에 이곳에 살았던 풍경이었다. 주민들은 난간에 매달려 자신들이 지워 버린 0층을 내려다봤다.

다음 날 게시판에는 음수가 적혀 있었다. 지하층 주민들은 그 숫자를 읽지 않았고, 지상층 주민들은 이제 아래와 위 가운데 어느 쪽이 사라지는 방향인지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