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일어난 사람은 3호실의 노인이었다. 그는 수의를 입은 채 냉장고 문을 밀고 나와 맨발로 복도를 걸었다. 야간 직원 윤호는 도망치지 못했다. 한 시간 전 서류를 확인하며 노인의 이름을 소리 내 읽은 사람이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이름을 들은 사람
노인은 윤호에게 손을 뻗지 않았다. 두 걸음쯤 뒤에서 멈추고, 윤호가 움직이면 움직였다. 벽을 사이에 두면 가장 가까운 문 앞에서 기다렸다.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지만 이름을 다시 말할 때마다 고개가 조금 들렸다.
네 시 열 분이 되자 나머지 냉장고가 동시에 열렸다. 빈소에 안치된 사람뿐 아니라 병원 영안실과 오래된 묘지에서도 죽은 이들이 일어났다. 사고로 죽은 사람, 병으로 죽은 사람, 백 년 전에 묻힌 사람 모두 같은 속도로 걸었다.
그들이 향한 곳은 집도 묘지도 아니었다. 자기 이름을 마지막으로 입에 올린 사람이 있는 쪽이었다. 부고를 읽은 아나운서에게 수십 명이 모였고, 제사상 앞에서 할머니 이름을 부른 아이의 학교 담장에는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조문객 명부
도시는 이름을 지우기 시작했다. 장례식장 전광판이 꺼지고 부고 문자에는 관계만 남았다. 묘비에는 천이 씌워졌다. 사람들은 죽은 가족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 사진을 가리키거나 생전의 별명을 썼다.
그러나 한 번 불린 이름은 되돌릴 수 없었다. 느린 행렬은 며칠이 걸려도 멈추지 않았다. 강을 만나면 다리 입구에 모였고, 닫힌 건물 앞에서는 계단을 채웠다. 사람을 해치지 않는데도 도시는 움직일 수 없게 됐다.
윤호 뒤에는 열세 명이 붙었다. 그는 야간마다 명패를 읽고 유가족에게 빈소를 안내했다. 어떤 얼굴은 기억났고 어떤 얼굴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윤호가 장례식장을 떠나자 행렬도 함께 도로로 나왔다.
다시 부르는 일
사흘째, 윤호는 체육관에 마련된 임시 숙소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그의 뒤를 보고 문을 닫으려 했다. 그때 한 여자가 행렬 속 중학생을 알아봤다. 여자는 이름을 불렀고, 아이는 처음으로 윤호 곁을 떠나 여자에게 걸어갔다.
그제야 사람들은 규칙을 이해했다. 마지막으로 이름을 부른 사람은 바뀔 수 있었다. 죽은 이를 떠넘길 수도, 데려올 수도 있었다. 체육관은 곧 이름을 둘러싼 다툼으로 가득 찼다.
어떤 가족은 차마 부르지 못했다. 어떤 가족은 낯선 사람 뒤에 선 고인을 데려오려고 확성기를 빌렸다. 죽은 이들은 그 선택을 판단하지 않고 가장 최근의 목소리로 방향만 바꿨다.
마지막 빈소
윤호는 다시 장례식장으로 돌아갔다. 남은 열두 명의 이름을 한 명씩 부른 뒤 빈소 안에 앉았다. 행렬은 원을 그리듯 그를 둘러쌌다. 밖에서는 가족들이 도착할 때마다 한 사람씩 이름을 이어받았다.
아침이 밝을 무렵 마지막 노인만 남았다. 유가족 연락처는 끊겨 있었고 명부의 주소에는 재개발된 빈 터가 있었다. 윤호는 노인의 이름을 다시 불렀다. 떠나라고 할 사람이 없다는 뜻으로, 곁에 있어도 된다는 뜻으로.
그날 이후 장례식장은 다시 문을 열었다. 조문객은 영정 앞에서 이름을 말할지 침묵할지 스스로 정했다. 발인은 관을 옮기는 의식이 아니라, 누가 마지막 목소리를 맡을지 결정하는 일이 되었다.
새벽 장례식장 밖에서 맨발 끄는 소리가 한 번 멎었다. 윤호가 노인의 이름을 낮게 부르자 소리는 다시 한 걸음 뒤에서 이어졌다. 첫 버스가 두 사람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골목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