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체들은 새벽 안개와 함께 나타났다. 날개도 창문도 없이 검은 판이 여러 번 접힌 모양이었다. 한강 다리보다 넓었지만 물 위에는 그림자조차 만들지 않았다.

직선의 수거
오전 일곱 시, 강변의 가로등이 땅에서 뽑혔다. 이어 난간과 안테나, 철로가 가느다란 실에 매달려 올라갔다. 물체는 사람을 비켜 갔지만 그들이 서 있던 바닥의 타일 줄눈은 떼어 갔다.
건물은 기둥부터 사라졌다. 정확히 수직인 벽은 들렸고 오래 기울어진 담장은 남았다. 유리 빌딩은 조각처럼 해체됐지만 손으로 쌓은 돌계단과 뒤틀린 골목은 멀쩡했다.
처음에는 외계인이 자원을 훔친다고 여겼다. 그러나 금속과 콘크리트가 아니라 반듯함 자체가 사라지고 있었다. 자로 그은 선은 종이에서도 떠올랐다.
휘어진 도시
목수와 미장공이 도시의 설계자가 됐다. 도로에는 일부러 굴곡을 만들고 문틀을 비스듬히 세웠다. 곧은 숟가락은 구부러졌고 책장은 부채처럼 펼쳐졌다.
오래된 시장과 달동네에는 피난민이 몰렸다. 효율이 낮아 철거 대상이던 공간이 외계 물체가 이해하지 못하는 요새가 됐다. 반듯한 신도시는 지도에서 먼저 사라졌다.
수학 교사 윤서는 물체가 직선을 수거하는 게 아니라 수집한다고 생각했다. 하늘 위 검은 판의 주름 사이에는 가져간 난간과 도로가 거대한 문장처럼 배열돼 있었다.
외계의 문장
윤서는 운동장에 밧줄로 일부러 삐뚤어진 원을 만들었다. 물체 하나가 처음으로 고도를 낮췄다. 원은 수거되지 않았고, 대신 판의 모서리 하나가 같은 곡률로 천천히 휘었다.
그들은 도시를 파괴하는 군대가 아니라 곡선을 모르는 존재였다. 인간의 직선을 언어로 받아 적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그 학습 과정이 도시를 해체했다.
목수들은 가장 오래된 골목의 모양을 강변에 크게 그렸다. 접힌 물체들은 그 불규칙한 선을 따라 움직이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휘어졌다.
남겨진 모서리
일주일 뒤 물체들은 처음과 다른 형태로 떠났다. 수거한 직선은 돌아오지 않았다. 서울에는 기울어진 집과 구부린 도구, 둥글게 이어진 길만 남았다.
재건 도면에서 자가 사라졌다. 집마다 한쪽 벽을 일부러 비뚤게 두고, 새 다리는 강물의 굽이를 따라 만들었다.
하늘에서 작은 검은 조각 하나가 떨어졌다. 완벽한 직사각형이었던 흔적은 남아 있었지만, 네 모서리는 사람의 손으로 빚은 그릇처럼 제각각 둥글었다.
접힌 선이 풀린 자리마다 도로 폭과 건물 각도가 조금씩 어긋나 있었다. 새 지도는 인쇄하자마자 틀렸다. 배달 기사들은 종이를 내려놓고 전날 생긴 골목의 냄새를 따라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