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사라진 뒤에도 해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였다. 다만 지평선에 닿으면 납작해져 도로 아래를 통과하지 않고 다시 동쪽으로 미끄러졌다. 노을은 하루에 두 번 있었지만 어둠은 오지 않았다.

잠보다 먼저 사라진 것
첫 주에는 사람들이 은박지와 검은 천으로 창문을 가렸다. 빛은 천을 통과하지 않았지만 어둠도 생기지 않았다. 가려진 방은 희게 빛나는 벽만 남은 공간이 됐다. 눈을 감아도 눈꺼풀 안쪽은 밝았다.
사람들은 잠을 잃기 전에 비밀을 잃었다. 서랍 안과 침대 밑, 주머니 속까지 희미하게 보였다. 사진 뒷면의 글씨와 오래 덮어 둔 얼룩이 드러났다. 그림자는 물체 아래 붙은 얇은 테두기로 줄었다.
여섯째 날, 종로의 오래된 우물에서 검은 물이 올라왔다. 물은 젖지 않았고 손을 넣으면 손목 아래가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양동이를 방 안에 쏟자 정확히 열일곱 분 동안 그 방에 밤이 생겼다.
열여덟 번째 분에 어둠은 바닥에서 떨어져 나갔다. 창문과 문틈을 찾아 검은 연기처럼 빠져나간 뒤 우물 쪽으로 돌아갔다.
항아리 배급
구청은 우물 주변에 펜스를 세우고 검은 도자기 항아리를 주문했다. 유리와 금속은 밤을 담지 못했다. 플라스틱 통에서는 어둠이 얇은 막처럼 새어 나왔다. 흙을 구워 만든 그릇만 열일곱 분을 온전히 보관했다.
배급은 가구당 하루 한 항아리였다. 주민들은 아침부터 골목에 줄을 섰다. 낮밖에 없는 세계에서 아침이라는 말은 배급 시작 시간을 뜻했다.
항아리를 받은 사람은 뚜껑의 매듭을 풀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다. 밤은 쌓아 둘 수 없었다. 자정이었던 시각이 지나면 쓰지 않은 어둠도 우물로 돌아갔다. 거래와 저축이 불가능한 유일한 배급품이었다.
사람들은 열일곱 분의 용도를 정해야 했다. 잠을 자는 데 쓰기에는 짧았다. 부부는 서로에게 하지 못한 말을 밤 안에서 했다. 아이들은 어둠 속에서 생일 촛불을 켰다. 누군가는 혼자 울었고, 누군가는 밝은 곳에서 읽을 수 없는 편지를 꺼냈다.
밤 도둑
어둠을 훔치는 방법은 항아리를 가져가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집 창문 아래에서 기다리다가 밤이 빠져나오는 순간 입구를 막으면 됐다. 돌아갈 길을 잃은 어둠은 가장 가까운 빈 그릇으로 들어갔다.
골목마다 밤 도둑이 생겼다. 사람들은 창문 밖에 거울을 달고, 남은 몇 초를 확인하려고 초시계를 켰다. 어둠 속에서는 시계 화면도 보이지 않았기에 열일곱 분은 몸으로 짐작해야 했다.
밤을 오래 가진 집은 신고 대상이 됐다. 창문이 스무 분 넘게 검으면 단속반이 문을 두드렸다. 사람들은 수면이 아니라 불법 보관을 의심했다. 어둠은 사적인 시간이면서 검문 가능한 물질이 됐다.
마지막 우물
여섯 달째 되는 날, 우물의 수위가 낮아졌다. 두레박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항아리 하나를 채울 만큼만 밤이 묻어 나왔다. 배급 시간은 짧아졌지만 줄은 길어졌다.
마지막 항아리는 골목에서 가장 오래 산 노인에게 돌아갔다. 사람들은 그가 잠드는 데 쓰리라 생각했다. 노인은 항아리를 들고 빈집을 돌았다. 창문마다 밤을 한 줌씩 바르고, 대문 틈과 지붕 아래에도 얇게 나눴다.
어둠은 열일곱 분이 지나도 돌아가지 않았다. 골목의 작은 검은 조각들이 서로를 찾아 이어졌다. 집 한 채를 덮고, 전봇대를 타고, 다음 골목으로 번졌다.
사람들은 도망치지 않았다. 여섯 달 만에 처음 보는 별이 하나씩 나타났다. 누군가는 항아리를 내려놓았고 누군가는 얼굴을 가렸다. 밤은 배급표를 확인하지 않고 도시 전체를 같은 속도로 덮었다.
해는 여전히 지지 않았다. 다만 아무도 보지 않는 동안, 밤의 바깥을 계속 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