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섬광은 서쪽 하늘에서 보였다. 소리는 한참 뒤에 왔고 단지의 유리창 몇 장이 깨졌다. 각 집은 창문을 막고 라디오를 켰지만, 방송은 도시 이름을 두 번 읽은 뒤 끊겼다.

빈 봉투
사흘째 아침, 우편 노동자 복장을 한 사람이 단지에 들어왔다. 얼굴은 마스크와 모자에 가려져 있었다. 그는 모든 우편함에 흰 봉투 하나씩을 넣었다. 봉투에는 우표도 주소도 없었고 안에는 아무 종이도 없었다.
그날 오후 검은 비가 내렸다. 빗물은 잉크처럼 불투명했고 금속 표면에 얇은 얼룩을 남겼다. 102호 아이가 봉투를 창밖에 내밀자 종이 위에 어머니 이름이 떠올랐다.
다음 날 비가 그쳤을 때 어머니는 사라졌다. 방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침대에는 몸의 무게만큼 눌린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 뒤로 방사선이나 피폭보다 봉투를 먼저 두려워했다.
이름을 보지 않는 법
주민 회의는 편지를 태우기로 했다. 그러나 불에 넣은 봉투는 타지 않고 검은 연기만 내뿜었다. 찢으면 조각마다 같은 이름이 나타났다. 버린 봉투는 다음 날 우편함으로 돌아왔다.
우편함 아래마다 빗물 받는 그릇이 놓였다. 보지 않겠다고 말하면서도 누구의 이름이 오는지 확인했다. 자기 이름이 아닌 것을 보고 안도한 뒤 죄책감 때문에 서로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어떤 집은 이름이 나온 사람을 복도로 내보냈다. 어떤 집은 마지막 밤을 함께 보내려 문을 더 단단히 잠갔다. 비는 선택을 바꾸지 않았지만, 이름을 미리 아는 일이 가족의 시간을 바꿨다.
배달하는 사람
네 번째 비가 오기 전, 경비원 정식은 우편 노동자를 붙잡았다. 모자를 벗기자 그 아래에는 얼굴이 없었다. 젖은 종이처럼 희고 매끈한 표면만 있었다. 가방 안에는 단지 주민 수보다 한 장 많은 봉투가 남아 있었다.
정식이 마지막 봉투를 빗물에 담그자 자기 이름이 나타났다. 그는 우편 노동자가 사람이 아니라 역할이라는 것을 이해했다. 이름이 나온 사람이 다음 배달을 맡아야 비가 그친 뒤에도 흔적을 남길 수 있었다.
정식은 사라지기 전 우편 가방을 메었다. 각 집에 편지를 넣으며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도 열어 주지 않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경비실 우편함에 자기 봉투를 넣었다.
마지막 수신인
비는 일곱 번 내리고 멈췄다. 라디오에서는 더 이상 폭발 소식이 나오지 않았고 하늘은 회색으로 굳었다. 단지 주민은 절반으로 줄었지만 우편함에는 매번 정확한 수의 봉투가 있었다.
여덟 번째 아침, 아이가 검은 빗물 대신 맑은 수돗물에 봉투를 담갔다. 이름은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종이 안쪽에서 짧은 문장이 비쳤다. 오늘은 아무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적혀 있었다.
모든 봉투가 처음으로 경비실 한곳에 모였다. 빈 종이를 벽에 이어 붙이자 사라진 이들의 이름이 물기 없이도 희미하게 돌아왔다. 예고가 아니라 명부가 된 것이다.
그날 우편 노동자는 오지 않았다. 맑은 날이 일주일 이어졌지만 우편함 아래의 그릇에는 늘 물이 반쯤 담겨 있었다. 비가 오지 않는 밤에도 몇몇 주민은 내려와 수면에 비친 자기 이름을 확인했다.